일제강점기(1910-1945년)는 일본이 한반도를 강제로 병합해 지배하던 시기로, 한국인들은 여러 방면에서 식민 통치를 견뎌야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1930년대부터 본격화된 ‘민족 말살 정책’은 한국인의 민족 정체성을 뿌리부터 흔드는 가혹한 통치 정책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정책에 한국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하며 민족의 정체성과 독립에 대한 열망을 지켰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일제강점기 민족 말살 정책의 배경과 내용, 그리고 이에 맞선 저항 운동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민족 말살 정책의 배경
1930년대 들어 일제는 만주 사변(1931년)과 중일 전쟁(1937년)을 일으키며 본격적으로 대륙 침략을 확대했습니다. 이러한 군사적 팽창을 위해 일제는 한반도를 군사적, 경제적 자원 공급지로 삼으려 했습니다. 이를 위해 한국인의 정체성을 말살하고 일본에 대한 절대 충성을 강요하는 ‘황민화(皇民化) 정책’을 추진하게 되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한국을 일본의 완전한 일부로 흡수하려는 전략이었습니다. 특히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표어 아래 조선과 일본이 하나라는 허구적 이념을 강조하며 강압적인 동화 정책을 펼쳤습니다.
2. 민족 말살 정책의 주요 내용
민족 말살 정책은 한국인의 언어, 문화, 역사, 종교 등 민족적 정체성의 모든 요소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정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 언어 말살: 조선어 사용 금지와 일본어 강요
학교와 공공기관에서 한국어 사용이 금지되고 일본어 교육이 강제되었습니다. 조선어 수업은 점점 축소되었으며, 공무원이나 교사는 모두 일본어로 업무를 보아야 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인의 사고와 감정 표현조차 일본화하려 했습니다.
나. 창씨개명 강요
1939년부터 ‘창씨개명(創氏改名)’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이는 조선인의 성씨를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한 정책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시도였습니다. 한국인의 이름에서 고유성을 제거함으로써 민족 정체성을 더욱 무너뜨리고자 했습니다.
다. 신사 참배 강요
일제는 일본의 신토(神道) 신사를 세워 조선인들에게 참배를 강요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인들이 일본의 황실과 신에 충성을 맹세하도록 만들려 했습니다. 신사 참배를 거부하면 학교와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는 등 강압적인 방식으로 신사 참배가 이뤄졌습니다.
라. 역사 교육 왜곡
한국의 역사는 학교 교육에서 배제되고 일본의 역사와 미화를 강조하는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조선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음으로써 한국인 스스로의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지우고자 했습니다.
3. 민족 말살 정책에 대한 저항
한국인들은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에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했습니다. 이러한 저항은 문화적, 종교적, 교육적, 무장 항쟁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습니다.
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일제의 억압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갔습니다. 상하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은 지속적으로 한국인의 독립 의식을 고취했으며, 김구, 이승만 등 지도자들은 외교적 노력을 통해 국제 사회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했습니다. 의열단과 한인 애국단 등은 의열투쟁을 통해 일제의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저항을 전개했습니다.
나. 학생과 청년들의 운동
학생과 청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저항을 전개했습니다.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을 비롯해 학생들이 주도한 독립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은 학내에서 비밀 결사 조직을 결성해 일제의 교육 정책에 맞서거나 항일 시위에 나섰습니다.
다. 종교계의 저항
기독교, 천도교, 불교 등의 종교 단체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특히 천주교와 기독교 단체는 일본의 신사 참배 강요에 강력히 반대하며 항거했습니다. 일부 승려와 기독교 목회자들은 교육 기관을 운영하면서 민족 교육을 통해 민족 정체성을 고취하는 데 힘썼습니다.
라. 민족 문화 수호 운동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언론과 문학계에서도 큰 저항이 있었습니다. 시인, 소설가들은 저항 문학을 통해 민족의 고통을 표현하고 민중들에게 독립 의식을 고취했습니다. 또한 한국의 전통 문화와 예술을 지키려는 노력도 이어졌으며, 이를 통해 일제의 문화적 압박에 맞섰습니다.
4. 결론
일제강점기의 민족 말살 정책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폭력적 통치 정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맞선 한국인의 저항은 끊임없었으며,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적인 투쟁과 청년, 종교인, 문학계의 끈질긴 저항은 일제의 억압을 넘어 한국 민족의 자긍심과 독립 의지를 지켜냈습니다. 이러한 저항 운동들은 훗날 해방 후 독립된 한국 사회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으며, 오늘날 한국인들에게도 소중한 역사적 자산으로 남아 있습니다.
Q&A
Q1: 창씨개명은 언제 시행되었나요?
A1: 창씨개명은 1939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이는 한국인의 성씨를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강요한 정책으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Q2: 내선일체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A2: 내선일체는 일본과 한국이 하나라는 허구적 이념을 강조한 구호로, 일본이 한국을 완전히 동화시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조선인을 일본화하여 식민지 지배를 영구화하려 했습니다.
Q3: 신사 참배는 왜 강요되었나요?
A3: 신사 참배는 일본 황실과 신토 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도록 강요한 것으로, 이를 통해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한 절대 충성을 다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Q4: 학생들이 주도한 항일 운동 사례가 있나요?
A4: 대표적인 사례로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일본의 교육 정책에 저항하며 비밀 결사를 조직하고 시위를 전개하는 등 독립운동의 중요한 주체였습니다.
Q5: 일제강점기의 저항 문학에는 어떤 작가들이 있었나요?
A5: 저항 문학을 통해 민족의 고통과 독립 의지를 표현한 작가들로는 윤동주, 이상화, 한용운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시와 소설을 통해 일제에 저항하고 독립 의식을 고취했습니다.